예전에 같은 반 친구가 함께 자라온 강아지를 무지개다리 너머로 먼저 떠나보내준 적이 있어. 애써 괜찮은 척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뭐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때의 우리는 누군가와의 이별을 많이 겪어본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떠한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고, 슬픔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익숙하지 않았으니까 잘은 몰라도 그냥 그렇게 넘어갔던 거지.
나도 같은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어. 서두른 말은 상처가 되기도 하니까 주변을 서성이면서 어떤 말이 힘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해 봤지만 무엇이든 간에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계속 친구 책상 근처를 서성이다가 돌아가고, 다시 서성이다가, 돌아가고. 그때 처음으로 세상에는 내가 공감해 줄 수 없는 일이 있구나 깨닫게 된 것 같아. 정말 좋아하던 친구라 옆에서 위로가 되고 싶었는데 힘들 때 기댈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건 정말 무기력하더라.
나이가 든 지금도 위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생각은 더 많아져서 어설픈 말을 건네기는 무서워졌고 여전히 이별은 익숙지 않아서 예전의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또 주변을 맴돌고만 있을 것 같아. 아직도 친구 책상을 빙빙 도는 그때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
그래서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는 말이 있잖아. 그 말이 정말 맞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근처에서 맴돌며 하는 얘기를 들어주는 것뿐이라서. 너의 슬픔이 누군가에게 말하면 줄어드는 슬픔이기를 기도하면서 빙빙 도는 거지.
그래서 나는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는 것 같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공감해 주고, 슬퍼할 수 있다면 자랑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해.
꼭 내가 같은 경험이 있어야만 위로를 해 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슬픔을 가진 사람들은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힘이 될 때가 있으니까. 나의 아픔이 나를 지나갔다는 것만으로 너에게는 위로가 되고 나에게는 자랑이 되고. 더할 나위 없이 성숙한 슬픔의 끝이 되겠다.
야, 너는 어떻게 생각해.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이 더 이상 자랑이 되지 않는 나이가 된 우리는 슬픔은 어떻게 받아들이는 게 좋을까. 나도 시를 읽고 어렴풋이 생각해 볼 뿐 어떻게 하는 게 좋은 건지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