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잘 지냈지? 거기는 어때?

여기는 말이야. 일주일 동안 가게 앞 풍경이 순식간에 바뀌었어. 꽃들이 하나둘씩 피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봉우리만 몇 개 보이더니 막상 피기 시작하니까 금세 빨라져서 나무를 채우는 속도가 아주 빨라. 요즘 네가 보는 풍경은 어때?

최근에 한 손님이 멀티버스 얘기를 해줬어. 이게 요즘 유행하는 장르라던데 맞아? 여기는 아무래도 소식이 조금 늦으니까 네게는 이미 지나간 장르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책방에도 SF나, 과학 서적들이 꽂혀있는 책장이 있거든. 책을 빌려 가시면서 살짝 얘기해 주셨는데 재미있어서 너랑도 이야기해보고 싶어.

우리가 생활을 하다 보면 발을 헛디뎌서 어딘가로 떨어질 뻔할 때가 있고, 옆으로 차가 쌩 지나갈 때가 있잖아. 흔히 얘기하는 죽을 뻔했다는 때. 사실은 그게 실제로 다 있었던 상황이래. 떨어지거나 차에 부딪혀서 죽는 미래와 그렇지 않은 미래가 나에게 공존하다가 사건이 일어났을 때, 분기점이 생기는거야. 우리가 죽을 뻔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죽지 않은 미래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인 거지.

너무 새로운 시선이었어. 우리는 작은 순간이더라도, 매 순간 여러 확률들을 뚫고 죽지 않는 미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게 살아있다는 것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만들어. 죽는 미래가 매번 함께 있다는 게 무섭기도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가 지금 살아있다는 건 무수히 많은 확률들을 지나왔다는 거잖아. 기적 같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른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또 어떨까. 살아남는 것만 해도 여러 멀티버스들 중에 하나가 되는 건데 그렇게 살아남아서, 살아남은 또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건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경우의 수들을 지나는 일이잖아. 그중에 너와 내가 만나는 멀티버스는 몇 개나 있었을까. 서로 편지를 보내고, 그걸 읽을 수 있는 멀티버스는 또 얼마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인연이라는 걸 얼마나 소중히 생각해야 할지 가늠이 안 돼.

한동안 이 멀티버스 얘기에 감동을 받아서 비슷한 생각을 표현한 누군가가 또 있나 찾아다녔었어. 그때 찾은 시가 있는데 한 번 같이 봐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