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도 잘 지냈어? 지난번에 보낸 시 잘 받아봤니. 내가 위로를 많이 받았던 시라서 꼭 너한테도 한번 소개해주고 싶었어. 나는 오늘 드디어 대청소해냈어! 맨날 보이는 데만 하다 보니까 구석에서 먼지가 점점 뭉치더라. 미야가 집어먹으려고 하는 걸 지금까지 몇 번 막았거든. 더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서 오늘 책방 문 닫고 때 빼고 광냈어. 이젠 바닥에 누워서 자도 될 정도야. 스스로 너무 대견해서 동네방네 소문 다 내고 다녔잖아. 다들 책방 들어오시다가 바닥에서 주무시지 말라고 아무리 깨끗해도 그건 아니라고!
청소만 했는데 하루가 다 갔다. 사실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일은 아니었는데 중간에 추억 여행 갔다 오느라 늦어졌어. 벽에 먼지들 털다 보니까 할머니가 예전부터 걸어 놓으신 사진들이 많은 거야. 우리 엄마 아기 때 사진부터 해서 결혼식 사진, 나 돌잔치 하는 사진, 좀 커서 다 같이 찍은 가족사진. 그래서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옛날 생각에 빠져버렸어.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나. 만화를 열심히 보고 있는데 만화 속에서 주인공이 생일 파티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 거야. 그걸 보는데 갑자기 부러워져서 엄마한테 나도 저렇게 생일 파티 하고 싶다고 말했었어. 천장에 풍선 가득하고, 엄청나게 큰 선물들 있고, 고깔 쓰고 촛불 부는 그런 파티라고 들떠서 설명하는데 엄마는 별 반응이 없었어. 그냥 들으면서 멋있네라고만 해서 나도 큰 기대를 안 하고 넘어갔어.
생일날이 돼서 집에 가는데 그날 교실 청소가 생각보다 빨리 끝났었던 거 같아. 좀 일찍 집에 들어가게 됐는데 집에 도착하니까 엄마가 안 보이는 거야. 어디 있나 하고 방안을 슬쩍 봤는데 방 천장에 풍선들이 듬성듬성 붙어있고 식탁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차려져 있더라고. 놀라서 서 있는데 한쪽에서 엄마가 남은 풍선들을 불고 있다가 나랑 눈이 딱 마주친 거야. 그래서 그냥 둘이 웃어버렸어. 크면서 해야 하는 것도 많아지고, 신경 쓸 일도 늘어나서 그런가 점점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잖아. 그래서 그런지 어릴 때 가족들과 보냈던 시간은 잘 잊히지 않는 것 같아. 나도 많은 생일날이 있었고,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한 적도, 더 큰 선물을 받은 적도 있었지만, 생일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순간은 엄마랑 눈이 마주쳐서 웃고 풍선을 같이 불면서 놀았던 그 날이야. 그 순간은 마치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있어. 그날, 풍선을 불면서 나를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게 궁금해질 때면 종종 꺼내 보는 시야.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은 기다리는 동안 점점 커져서 결국에는 풍선을 준비하다 나를 본 엄마의 웃음, 운동장에서 기다리던 아이를 만난 아빠의 표정처럼 새어 나오는 게 아닐까 싶어. 어린 왕자에서도 유명한 구절이 있잖아. ‘오후 네 시에 네가 온다면 세 시부터 나는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기다림조차 행복한 사랑은 얼마나 커다란 사랑인지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 같아. 너는 선명하게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어? 아니면 잊고 싶지 않을 정도로 좋았던 기억이 있니? 있으면 이번에도 답장으로 알려주라. 항상 답장 잘 보고 있어. 점점 날이 쌀쌀해진다. 비도 자주 오고.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고 겉옷 꼭 챙겨서 다녀. 안녕! 추신. 오늘 시랑은 이 노래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다섯 - youth'야 아래 링크에서 당신의 기억, 추억을 들려주세요 👂 리릭은 매주 수요일 6시 30분에 발송됩니다. 리릭이 마음에 드셨다면, 친구들에게 추천해주세요 (아래 구독하기 링크를 친구들에게 보내면 쉽게 추천할 수 있어요) 그리고, 답장은 언제나 환영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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