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겨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 안겨 있는 사람을 더 꼭 끌어안으며 생각한다’ 정말 대단한 말이지 않아? 벅차오르는 감정에 휩싸여 안았을 때, 정작 안겨 있는 사람의 얼굴을 안는 사람은 볼 수 없다니. 모순적이고, 애틋한 것 같아. 너도 이 구절을 보면 같은 생각이 드니?
세상은 수많은 숫자로 표현되잖아. 요즘은 더더욱. 개인의 행복은 성적, 연봉에 좌우되고, 청년의 불행은 실업률로 표현되기도 하고. 사실 내 인생의 즐거움은 오랜만에 만난 좋아하는 친구, 맛있는 음식, 일상의 산책, 길가에서 만난 동물 친구 같은 것들로 좌우되는데. 주위를 둘러보면 숫자로 인생을 표현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야. 행복조차도 행복지수로 환산해서 말하곤 하잖아.
어떤 물리학자가 수학은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명이 아니라서 죽음을 의미한대. 수학으로 표현되는 세상은 차가운 죽음의 세상인 거지. 그래서 그 속을 지내는 수학자의 아침은 시처럼 정적인가 봐. 그분은 그렇다 하더라도 수학자에게 우리의 숨결로 띄어진, 약간의 휘어진 곡선의 형태를 보이는 아침을 줘야 한다고 하더라.
숫자로만 표현되는 세상에 사는 우리가 모두 수학자가 아닐까 생각했어. 차갑더라도, 우리는 꿋꿋하게 그 숫자들에서 의미를, 낭만을 찾아야겠어. 우리의 숨결이 단정한 선분을 꺾을 수 있도록 말이야. 언젠가 휘어질 직선을 생각하면서.
편지 다 쓰니까 다시 졸려. 어이없지. 오늘은 책방 출근도 좀 천천히 해야겠어.
그럼 나 잠깐만 잠들게. r=1-sinθ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