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 잘 보냈어? 벌써 연휴가 다 지나갔다. 휴일은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의문이야.
나는 잘 보냈어. 잘 보냈다는 게 모든 순간 기분이 들떠있었다는 의미만 아니라면 말이야.
너에게만 하는 얘기인데 요즘 내가 좀 힘들었나 봐. 한 번씩 그런 때가 오잖아. 자존감이 떨어지고 세상만사가 우울하게 보일 때. 어쩌다 한 번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시기라고 생각해서 괴롭지는 않아. 괜찮아. 다만 명절이 끝나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런 감정을 마주하는 게 조금 버거울 뿐이야.
명절이라는 게 복작복작하고, 즐겁다 보니깐, 슬픔이 끼어들 틈이 잘 보이지 않아. 그렇다 보니 이 시기에 찾아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은 제대로 해소를 못 하고 묻어두게 돼. 갑자기 알 수 없는 슬픔이 찾아와도, 오랜만에 본 가족들의 질문, 궁금증에 상처를 받았을 때도.
그래서 그냥 오늘 같은 날에도 감정을 이야기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어. 너도 묻어두려 했었던 감정이 있다면 편하게 나한테 이야기해 버려. 나는 이런 시기가 돌아오면 꼭 읽는 시가 있어. 내가 좋아하는 윤동주 시인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었다는 게 새롭고 위안이 많이 돼. 항상 성찰하는 모습과 순수한 모습을 위주로 봤었는데 그에게도 이런 이면이 있었구나. 누구나 슬픔을 마주할 때 드는 생각과 감정이 있구나. 그래서 감정의 한가운데에서 이 시를 읽을 때면 항상 위로돼. 시인이 나를 대신해서 화를 내주는 것 같기도 하고, 아이러니한 영원히 슬플 것이라는 말에 체념이 되기도 하고, 모두에게 영원한 슬픔이 마음 한구석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 내가 들고 있는 감정이 조금은 가벼워지기도 해. 위로라는 게 나의 마음을 궁금해하고, 진심으로 서로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이루어지기도 하는 것 같아. 내가 오래전 쓰인 이 시를 읽으며 힘을 얻듯이. 그러니 우리끼리는 앞으로 명절 잘 보냈어? 라고 물을 땐, 어떤 감정이든 잘 소화하고 있냐 하는 마음을 같이 담아 보내보자. 나도 다시 물어볼게. 추석 잘 보냈어? 추신 1. 윤동주 시인의 ‘팔복’이 나에겐 위로가 되었지만 네게는 또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시인이 직접 위로의 마음을 담았던 시를 한 편 더 보내. 어떤 시든 간에 네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 거미란 놈이 흉한 심보로 병원 뒤뜰 난간과 꽃밭 사이 사람 발이 잘 닿지 않는 곳에 그물을 쳐 놓았다. 옥외 요양을 받는 젊은 사나이가 누워서 쳐다보기 바르게- 나비가 한 마리 꽃밭에 날아들다 그물에 걸리었다. 노-란 날개를 파닥거려도 파닥거려도 나비는 자꾸 김기우기만 한다. 거미는 쏜살같이 가더니 끝없는 끝없는 실을 뽑아 나비의 온 몸을 감아버린다. 사나이는 긴 한숨을 쉬었다. 나이보담 무수한 고생 끝에 때를 잃고 병을 얻은 이 사나이를 위로할 말이 - 거미줄을 헝클어 버리는 것 밖에 위로의 말이 없었다. 위로, 윤동주 추신. 오늘 노래도 내 친구 '윤시월'이가 골라줬어. 어떻게 늘 이런 좋은 노래를 찾는지 궁금해. 너도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41.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𝑷𝒍𝒂𝒚𝒍𝒊𝒔𝒕]' 아래 링크에서 당신의 감정을 들려주세요. 당신이 명절 이야기를 들려주셔도 좋답니다! 리릭은 매주 수요일 6시 30분에 발송됩니다. 리릭이 마음에 드셨다면, 친구들에게 추천해주세요 (아래 구독하기 링크를 친구들에게 보내면 쉽게 추천할 수 있어요) 그리고, 답장은 언제나 환영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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