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오늘은 시로 먼저 인사를 해봤어. 요즘 네가 힘들어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날이 좋을수록 상처는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법이잖아. 만개하는 꽃들과는 대비되는 내 모습이 더 별로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남들은 좋다는 봄에 매일이 새로운 아픔이다 그치?
어떤 상처든 간에 마음이 아프면 같은 자리를 맴돌게 되는 것 같아. 과거에 받았던 상처를 일부러 들춰보기도 하고, 하지 못한 일에 대해서 후회를 곱씹기도 하고. 무엇을 가지는 게, 어디로 가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으니까 스스로에게 더 가혹하게 굴게 돼. 아마 시에서 말하는 트라이앵글이 이런 부분을 말하는 건 아닐까.
나이를 먹는다고 해도 이런 굴레가 사라지지는 않는 것 같아. 나도 어느새 내가 어릴 적에 멋있어 보였던, 내 질문의 대답을 모두 알고 있는 것 같던 나이가 되었는데도 사실 예전에 비해 많은 걸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거든.
나이만 착실하게 먹어도 시간이 쌓이면서 점점 고민이 줄고, 생각이 깊어지고 할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 아마 우리는 눈을 감는 날까지 트라이앵글 위에서 위치만 바꿔가며 맴돌고 있는 건 아닐까. 흔들리는 청춘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런 생각을 들 때면 내가 알던 청춘의 의미가 달랐던 것 같아서 조금 무서워지곤 해.
지금 너의 위치는 어디니. 어느 꼭짓점에 있어? 기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에 보냈던 '수학자의 아침' 시에서 삼각형처럼 죽을게라는 뜻이 우리의 돌고 도는 트라이앵글을 의미한 건 아니었을까.
약간 어두운 얘기만 한 것 같지만 그래도 나는 한 가지 믿는 구석이 있어. 우리가 한 꼭지에서 다른 꼭지로 넘어가는 동안에는 즐거운 일도, 기쁜 일도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 아픔에 신경 쓰일 때는 알기 어렵지만, 사실 우리의 시간은 반드시 아픔으로만 가득 차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옛날의 내가 이것을 원해서 지금 이것을 가졌고, 여기를 원해서 여기에 왔을 텐데. 과거에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생각보다는 항상 새로운 것을 원하고, 새로운 곳을 꿈꾸는 청춘이기 때문에 그런 거라 생각할래.
편지로 전하는 마음이 너의 아픔을 크게 덜어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네가 편지를 보고 우리가 보내는 시간 속에는 아픈 일만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할 정도의 환기는 되고 있으면 좋겠다.
오늘의 봄은 평온하고 따뜻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