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요즘 날이 추워. 옷 따뜻하게 입고 다니고 있지?

여기는 햇빛이 들어오면 아직 따뜻해서 책방에 앉아 창가로 들어오는 햇빛을 쐬고 있으면 꾸벅꾸벅 졸게 돼. 아까는 낮에 내내 졸다가 그만 잘 쓰던 펜을 책상에서 떨어트렸더니 바닥에 있는 틈으로 들어가 잃어버렸어.

틈 사이로 볼펜이 어디 있는지는 보이는데 손가락이 들어가지 않아서 결국은 꺼내지 못했어. 손님도 안 계시던 터라 1시간 정도 바닥에 엎드려서 끙끙대다 보니 땀이 다 나더라고. 포기하고 다른 펜을 꺼내는데 문득 옛날 생각이 나서 편지를 보내.

예전에 학교에서 항상 붙어 다니는 친구가 있었어. 처음에는 같은 반, 짝이 되면서 알게 되었는데 얘기를 해보니까 서로 비슷한 점이 너무 많은 거야. 점점 친해지며 한참 내내 붙어있을 즈음, 친구가 멀리 이사를 가게 됐어. 애써 서운한 마음을 누르고 있는데 친구가 전학을 가면서 내게 볼펜 하나를 주더라고. 친구가 떠난 후, 그 볼펜은 나에게 곧 그 친구였어.

시간이 지나고 친구가 없는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학교에서 숙제를 하다가 그 볼펜을 바닥에 떨어트렸어. 그런데 데굴데굴 굴러가더니 틈으로 쏙 빠져 들어가는 거야. 나는 너무 당황해서 숙제도 팽개치고 볼펜을 꺼내려고 온갖 방법을 다 써봤지만 어떻게 해도 볼펜을 꺼낼 수는 없었어. 주변에서는 다른 펜을 쓰라고, 새것을 사는 게 좋지 않겠냐고 이야기했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가 않았어. 나는 볼펜을 잃어버린 게 아니었거든.

결국 나는 하루를 내내 볼펜이 빠진 틈을 보며 보냈어. 부주의한 나를 자책도 했다가, 친구를 생각하며 미안해도 했다가. 필기구일 뿐이었지만 친구와 나눴던 마음들이 고스란히 들어있었던 거라 나는 한참을 놓아주지 못했고, 뒤늦게 내 친구의 소실을 마주해야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