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코더 📹

2023.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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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지난 한 주는 어땠어? 잘 잤어?

나는 오늘 꿈을 꾸느라 잠에서 좀 일찍 깼어. 다행히 피곤하지는 않아.

나한테는 반복적으로 꾸는 꿈들이 몇 가지 있어.

오늘 꾼 건 그중에 하나인 학교에 있는 꿈이야.

꿈이 시작되면 나는 학교 한가운데에 서 있어. 우리 학교에는 교실이 많은 본관, 도서관이랑 급식실 같은 곳이 있는 별관, 두 개의 건물이 있었는데 그 둘은 하늘다리라고 불리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었어. 나는 도서부였기 때문에 매 점심시간마다 본관에서 출발해 하늘다리를 건너, 별관의 계단을 올라 도서관을 가곤 했지.

꿈속에서도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친구들 사이로 하늘다리를 건너고 계단을 올라 도서관으로 갔어. 사서 선생님이 계시면 문이 열려있고, 안 계시면 닫혀있었는데 꿈속에서 어땠는지는 항상 기억이 안 나네. 도서관 문 앞에 도착하고 나면 나는 어김없이 본관의 복도로 돌아와. 그리곤 다시 도서관을 향해서 걸어가. 왜 도서관으로 가는지, 왜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지는 모두 잠이 깨고 나서야 드는 생각이야. 꿈 안에서는 별생각 없이 계속 가거든.

한 번은 왜 이런 꿈을 꾸는지에 대해 생각해 봤어. 학교 도서관을 가는 꿈뿐만 아니라 놀이터에 앉아있는 꿈, 할머니 집에 있는 꿈, 우산을 쓰는 꿈. 계속해서 꾸는 몇 가지 꿈들이 있거든. 반복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하다가 나는 우리 머리에 비디오가 꽂혀있는 책장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

너는 영상을 찍은 것처럼 오래 남아있는 장면이 있니.

어떤 기억들은 하나의 비디오처럼 녹화되어서 머릿속의 책장에 꽂히는 것 같아. 그리고 밤이 되면 꿈이라는 형태로 비디오를 틀어 보는 거지.

때때로 그것들은 감정과는 상관없이 녹화되는 것 같아. 도서관 안에 있는 시간이 아니라 도서관으로 가는 길이 반복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어. 내가 꾸고 싶은 꿈을 꿀 수 없듯이 우연하게 녹화 버튼이 눌리는 것 같아.

때로는 사실 그대로 녹화되지도 않는 것 같아. 같은 학교를 다니지 않았던 친구들이 지나가고, 복도가 끝도 없이 길어지기도 하거든.

그래서 꿈에서 깨고 나면 기분이 울렁울렁해. 왜 그 장면이 나에게 남아있을까를 생각하게 되는데, 내가 모르고 있는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거든. 이 시가 나에게 오래 기억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 같아. 텅 빈 교실에서 리코더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하필이면 그 장면이 녹화된 이유를 상상하고 있으면 내가 지나왔지만 모르고 있던 한 장면처럼 느껴져.

너의 책장에 꽂혀있는 비디오는 어떤 장면이니?

우연히 녹화되기도 하니까 생각이 안 날 수도 있을 것 같아. 아마 나도 꿈으로 꾸지 않았다면 생각하지 못했겠지? 그럼 그동안의 시간 중에서 비디오로 찍어두고 싶은 장면을 알려줘.

너의 책장에는 어떤 내용이 채워져 있을지 너무 궁금하다.

그럼 또 편지 쓸게.

안녕.